이규보의 삶과 민족 서사시 동명왕편
>> 이규보가 살던 역사적, 사회적 배경
이규보가 살던 시기는 고려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던 때이다. 그는 1168년에 태어나 1241년에 운명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고려사회는 시련과 절망이 되풀이되었었다. 1170년 정중부의 난은 귀족통
동명왕의 이야기를 황당하다 치부했으나 『구삼국사』 고려 초기에 편찬된 삼국시대의 역사서, 현전하지는 않으며 현전하지 않는다. 김부식(金富軾)의 《삼국사기》가 나온 뒤 ‘구’자를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. 1193년(명종 23) 이규보(李奎報)가 《동명왕편》을 쓰면서 자료로 삼았다는 《구삼국사》
유화의 강가 사통이요, 또 한번은 일광감응 난생이다. 해모수는 하늘에서 熊心山으로 ‘내려와’ 머무르다 다시 흘승골성으로 ‘내려온’, 天神이자 太陽神의 신격이라 할 수 있다. 따라서 해모수와 유화와의 관계는 하늘(산)에서 하강한 천신과 여성과의 야합인데, <동명왕편>에서 해모수는 혼인 후
이규보와 같은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이었을 것이다.
지금까지 우리는 이규보의 문학관과 당시대 정치적 현실을 바탕으로 『동국이상국집』의 편찬 의도와 <동명왕편>에 나와있는 민족의 주체성을 살펴보았다.
이규보가 지은 『동국이상국집』은 그 명칭이 고려의 재상 이규보의 문집이
동명왕 신화」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. 해모수와 정을 통하여 용궁에서 추방당한 유화가 밀폐된 방에 갇혔다가 후에 고구려 건국 시조가 된 주몽을 낳은 것이나, 주몽이 금와의 마굿간지기에서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고구려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. 주몽은 알로 탄생한다. 알은